영양에 유명한 오층석탑이 있다고 해서 서울로 가는 길에 보고 가기로 했다. 마을에 들어섰는데도
석탑은 보이지 않고 마을 집과 밭만 보였다.
나즈막한 산이 둘러쳐 있고 산세 지세가 평안한 느낌을 주었다.
마을은 이제부터인지 집들이 계속 나왔다.
겨울 땔감으로 쓸려고 모아둔 귀한 불쏘시개다.
엄청 넓은 평야쯤 되는가 싶을 정도로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저어기 산아래 석탑이 보인다.
울밑에 선 봉선화도 오랜만에 본다.
엣날 냄새가 나는 집이다. 그리고 전모를 나타내는 오층석탑은 국보다.
경북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391-6 국보 제 187호 오층모전석탑
경북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강가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이 마을을 ‘봉감(鳳甘)’이라고 부르기도 하여 ‘봉감탑’이라 이름붙여졌었다. 석탑 주변의 논밭에 기와조각과 청자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어, 이 일대가 절터였음을 알수 있다.
탑은 벽돌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흙과 돌을 섞어 낮게 바닥을 깔고, 10여 개의 길고 큰 돌을 짜서 쌓았다. 그 위의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 모두 벽돌 모양의 돌로 쌓았다.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두었는데, 감실 양쪽에 둔 2개의 화강암 기둥과 이맛돌의 섬세한 조각이 장식적인 효과를 더해주고 있다. 2층 이상의 몸돌은 독특하게도 중간정도의 높이마다 돌을 돌출되게 내밀어 띠를 이루고 있다. 지붕돌은 전탑의 양식에 따라 아래윗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고 있으며, 처마의 너비는 좁아져 있다.
1단 기단의 모습과 돌을 다듬은 솜씨, 감실의 장식 등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균형과 정연한 축조방식을 갖추고 있으며,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우수한 작품이다.
1977년 8월 22일 국보 제187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탑높이 약 9m, 초층(初層) 탑신(塔身) 폭 3.34m, 높이 2.04m이다. 축조 연대는 미상이나 신라시대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1단의 기단(基壇)은 편평한 자연석을 썼고, 한 변의 길이가 약 5m인 네모난 개석(蓋石) 위에 높이 41cm의 대석(臺石)이 있고 2단의 탑신(塔身) 받침이 구성되었으며 그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다.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도 모두 벽돌 모양의 돌로 쌓았다. 1층 탑신에는 섬세하게 조각한 문주(門柱)와 미석(眉石)이 있는 감실(龕室)을 두었다. 2층 이상의 탑신은 중간마다 돌을 내밀어 띠를 이룬 것이 특이하다. 옥개석은 아래위의 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었으며, 처마의 너비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정연하고도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탑으로, 국보 제30호인 분황사 석탑과 함께 신라시대의 모전석탑 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탑이다. 1980년에 해체, 복원된 바 있다. [두산백과]
높이 11m인 석탑은 국보 제187호로 전탑(塼塔)의 형식을 따라 지표에 토석(土石)을 섞어 단층의 기단을 축조하고 그 가운데에 자연석으로 굄을 만든 다음 탑신부(塔身部)에 사용한 것과 같은 모전석재를 이용하여 2단의 탑신 받침을 쌓았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屋蓋) 모두 벽돌모양으로 가공한 석재를 사용하였는데, 비교적 두껍고 잘 다듬어져 있으나 크기는 고르지 않다. 초층 옥신은 18단을 쌓아 높이 2.30m, 너비 3.26m가 되어 가장 크고 2층 이상은 차례로 체감되었다. 초층 옥신 남면에는 감실(龕室)을 개설하고 좌우의 주형(柱形)과 위의 이맛돌을 화강석으로 깎아 끼웠으며 하방석(下枋石)은 없다.
2층 이상의 옥신부는 층마다 중간위치에 모전석재를 약간 넓게 턱을 만들고 그 밑을 가공하지 않은 크고 작은 돌로 쌓고 위는 모전석재로 쌓았다. 따라서 옥신의 상하가 다른 모양으로 되어 다른 전탑이나 모전탑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고려시대 석탑에서 옥신 밑에 별석을 삽입하는 양식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생각된다.
옥신부 중간의 턱으로 해서 상하의 높이는 같으나 너비는 상단이 약간 좁은 점으로 보아도 별석 굄의 뜻이 나타나 있는 듯하다. 옥개부는 전탑의 형식을 따라 추녀의 너비가 좁아졌고 상하에 모두 층단받침이 있으며, 초층 옥개의 받침수는 8단이고 위로 갈수록 체감되었다. 현재 탑의 상태는 5층의 옥신부까지만 남아 있다.
이 탑은 당당한 위풍을 보여주는 대작으로 강가에 돌출된 대지 위에 건립된 점이 주목된다. 조성연대는 고려시대 전반기로 추정된다.[文化財大觀國寶 1(韓國文化財保護協會, 大學堂, 1986)]
영양 봉감모전오층석탑